본문 바로가기

영화보고

화장 - 중년의 고뇌

 

화장 - 중년의 고뇌

 

 

 

임권택 감독과 배우 안성기가 호흡을 맞춘 영화 <화장>을 보고 왔습니다. 안성기 씨와 안성기 씨의 아내로 나오는 김호정 씨의 케미가 정말 엄청난 그런 영화였습니다.

 

암에 걸린 아내라는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도, 꼭 중년이 아니더라도 남자라면(혹은 여자라도) 한 번쯤 겪었을 법한 현실적인 이야기입니다. 다만, 중년이라서 젊은 사람들보다야 무게감있고, 반면에 용기는 적어진다는 점에서 조금 다를 수 있겠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봤지만 많은 분들이 재미없게 보셨더군요;;ㅋㅋ 아무래도 격하게 공감하기 어렵다는 것이 평이 좀 낮은 이유이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델라이드라는 화장품 회사의 홍보팀 이사로서 상당한 신뢰를 받고 있는 "오상무(안성기)"의 아내는 어느 날 갑자기 애지중지하는 반려견 "보리"의 밥을 주던 도중 쓰러집니다. 한 차례 수술을 마쳤던 뇌종양이 다시 생겨난 건데요. 재발이라기보다는 새로 발생한 것에 가깝다는 종양 때문에 다시 투병생활을 시작하고, "오상무"는 그런 아내를 헌신적으로 간병하면서도 회사 일에도 매진합니다.

 

그런 "오상무"의 홍보팀에 "추은주(김민선)"가 새로 입사합니다. 고혹적이고 아름다운 젊은 여자. "오상무"는 묘한 감정을 느끼고, "추대리" 역시 "오상무"를 바라보는 눈빛이 범상치 않습니다.

 

 

 

 

 

 

<화장>은 중년이라서가 아닌, 남자이기 때문에 누구나 할 법한 현실적인 고뇌를 서정적으로 담았습니다.

 

복잡한 듯 전혀 복잡하지 않은 한 남자의 인생 이야기이라서, <은교>와는 다르게 본능적으로는 이해하나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아닌, 본능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충분히 이해가 가능한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다만 저런 특수한 상황에 놓이지 않았고, 중년의 연륜이 없기에 공감까지는 할 수 없었던 그런 이야기입니다.

 

아내와의 관계가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나오지 않지만 20여년이 훌쩍 넘도록 지내면서 애정도 없고, 의리도 없다면 말이 되지 않지요. 대부분의 남편, 아내들이 새로운 사랑을 꿈꾸면서도 도덕적인 개념에서 갈등하고 고뇌하겠죠.

 

하물며 곧 죽을 아내, 아무도 대신해주지 않는 힘겨운 상황, 그 모든 것을 놓고서도 그는 끝까지 갈등하고 고뇌합니다. 쉽게쉽게 변하고 헤어지는 요즘 부부들과는 다르게, "오상무"는, 긴긴 시간을 함께 한 아내와의 인연을 한 순간의 유혹 때문에 쉽사리 떨칠 수는 없는 것이지요.

 

 

 

 

 

또한 <화장>은, 다양한 세계,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공사관계, 상하관계가 확실한 옛날 사람인 "오상무"는, 먼저 굽힐 줄 알고 먼저 마음을 열 줄 알며, 담담히 이해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반면 점잖은 성격과는 반대로 불같은 성질을 가진 "추은주"는 이해할 줄 모르고, 타협할 줄 모르는 조금 자기중심적인 성격이 드러납니다. 타인을 신경쓰기보다, 자신의 인생을, 혹은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부끄럽고 황망한 일도 서슴지 않는 요즘 젊은이들의 단면적인 모습이 "추은주"안에 있습니다.

 

결국 인간은 자신의 일에서는 이기적일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화장>에서 보여지는 죽음은, 결국 타인의 죽음일 뿐입니다.

 

낮에는 "간병인"을, 퇴근 후에는 "오상무"가 간병을 했던 "아내". 삶과 죽음 사이에서 고통스러워했던 것은 투병 중이었던  "아내"와 그 간병을 했던 "오상무" 뿐. 가끔 문병이나 오는 듯한 "딸"은 아픈 엄마가 기저귀를 착용한 것에 울분을 토하며 울고, "처제"는 꽃상여로 장례를 치르지 않았다며 분노합니다.

 

장례식에 찾아오는 누구 하나 진심으로 그녀의 죽음을 슬퍼해주는 사람이 없고, 장례식에서마저 업무적인 회의를 해야하고, 그간 코피를 쏟아가며 쉬지 않고 간병했던 "오상무"의 노고를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으니까요. 결국 모두에게 그녀의 죽음은 타인의 죽음이고, 그가 겪은 고통 역시 타인의 것입니다. 자신의 일이 아니기에 이기적인 요구나, 이기적인 행동을 할 수 있을 테지요.

 

 

 

 

 

 

어쨌든 누군가는 <화장>의 내용이 지루하고 따분할 테고, 누군가는 지극히 공감되어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겠지요. 그것은 영화가 재미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가 아니라, 한 남자의 인생을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요즘 시대에서 한 회사의 상무이사로 모든 것을 가진 듯해 보이는 남자지만, 더없이 외롭고 힘든 남자이기도 합니다. 그런 힘든 상황에서도 모든 것을 어깨에 짊어지고 절대 넘어지지 않으려 힘겹게 버티고 선 고집세고 의리있는 남자이기도 하지요.

 

 

 

 

영화 <화장>의 포인트는, 정말 투병하고 있는 듯한 김호정과, 그런 아내를 담담하게 간병하는 안성기 두 사람의 연기입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오상무"의 마음을 공감하지는 못할 지언정, 가슴 깊이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두 사람의 정말 무시무시한 연기력 때문일 겁니다. 다만 이 엄청난 두 중견배우 사이에서 곧잘 따라가는, 그러나 제대로 묻어나진 못한 김규리의 연기는 조금 아쉽습니다.(그래도 한 남자를 두근거리게 만들 만큼 매혹적인 것은 사실이니까요.)